美 주택 월평균 임대료 최고 46% 폭등… 저소득층 쫓겨날 판

© 제공: 세계일보 미국에서 주택 공급 부족과 수요 급증으로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급등하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폴스처치의 추택 앞에 집이 팔렸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폴스처치=박영준 특파원
“이건 임대 갱신 계약서예요. 25% 인상과 40% 인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되어 있어요. 4월28일에 통지를 받았고, 5월21일까지 계약을 갱신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할지 알려달라고요. 우리는 임대회사에 연락해서 임대료를 많이 인상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이렇게는 살 형편이 안 돼요. 일주일째 답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이웃에 12가구도 저와 같은 처지라는 걸 알았어요.”
최근 미국 메릴랜드주에 사는 여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한 3분 남짓 영상이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22만명이 공감 버튼을 눌렀고, 2만개 가까운 댓글이 달리며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그녀는 현재 월세로 2600달러(약 322만원)를 내고 있는데, 1년 계약을 연장할 경우엔 매달 3250달러(403만원, 인상률 25%), 매달 계약을 연장할 경우엔 3650달러(453만원, 인상률 40%)로 월세 인상을 요구하는 임대계약서를 받고선 영상에 공개했다.
미국의 주택 임대료가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재택근무 등으로 도시를 빠져나갔던 사람들이 유턴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임대료가 고공행진 중이다.
수요는 폭발하는 상황에서 주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자 임대료가 솟아올랐다. 공급 부족의 주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주택공사 중단, 공급망 문제에 따른 건축자재 부족과 가격 인상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 드라이브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이자가 늘어나면서 임대료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대 46%나 오른 월세… “또 쫓겨날 위기”
부동산 중개업체인 레드핀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발표한 임대료 시장 동향에 따르면 4월 미국 전체 월평균 임대료는 1962달러로 1년 전 1705달러보다 15.1%나 뛰었다. 전역에서 매달 임대료로 1년 전보다 257달러를 더 낸다는 의미다. 이 업체가 분석한 50개 대도시 가운데 임대료가 1년 전보다 떨어진 곳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3.5%), 위스콘신주 밀워키(-8.5%),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1.8%) 3곳에 불과했다.
텍사스주 오스틴은 월평균 임대료가 2531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5.9%나 올랐고,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는 3117달러로 30.6%, 뉴욕주 뉴욕시는 3925달러로 28%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임대료도 2614달러로 10.3% 증가했다.
노동부가 지난달 12일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주거비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5.1% 상승해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 대도시 임대료는 전체 주거비 상승률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상황이다.
주거비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미국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에 주거비 상승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미국 언론은 코로나19 기간 정부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시행한 ‘임차인 퇴거 유예 조치’가 올해 초부터 종료되고, 월세는 폭등하면서 또다시 수백만명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경고음을 울리는 중이다.
특히 집을 가지지 못한 젊은 청년층과 저소득층이 임대료 인상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거주하면서 공공기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A(35)씨의 아파트도 월세가 애초 계약한 2000달러보다 약 20% 정도 오른 2400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A씨는 3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집주인과 협상을 해봐야 할 텐데 이미 인근 아파트 임대료가 일제히 오른 상황이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이사할 생각을 하면 이사비용이 고민이고,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변 지인들처럼 룸메이트를 구해서 임대료 부담을 덜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집값 주춤… 임대료 부담은↑
임대료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기록적인 집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고, 연준의 금리 인상도 임대료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4월 팔린 기존주택 중위 가격은 1년 전보다 14.8% 상승한 39만1200달러(4억8500만원)로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개시 이래 최고가를 기록했다.
주택 수요가 높은 데다 임대료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매물이 나오면 집을 직접 보지도 않고 구매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한 행사에서 “세인트루이스의 내 집을 매수자에게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 전액 현금으로 팔았다”고 소개하고 “여기 워싱턴에 집을 사려고 하는데 시장이 미쳤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일반 국민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주거비 상승을 꼽고, 통화정책 판단을 위해 부동산 시장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집값과 임대료에 상승 압력이 지속해서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집값 상승에는 제동을 거는 흐름이지만 임대료 인상 압박은 더욱 높일 전망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6일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1%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5월 초 금리가 5.3%로 2009년 이후 최고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가 꺾이는 흐름이다. 다만 지난해 연평균 금리 2.94%에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연준은 추가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예고한 상황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임대인들은 임대료를 높이지 않으면 임대료 수입보다 대출이자 부담이 더 커지는 역레버리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 인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주택 임대 사업을 하는 부동산 중개인 B씨는 통화에서 “새로운 집은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는 늘어나면서 기존주택의 임대료가 연쇄적으로 오르고 있다”면서 “조금 더 길게 2∼3년 전과 비교하면 페어팩스 카운티도 평균적으로 주택 임대료가 30∼40%는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집값이 급격하게 상승했는데 아직 그 임대료에 다 반영이 되지 않았고,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임대료는 당분간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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